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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왕갈비 vs 포천 이동 쪽갈비
Writer|관리자 | Date|2017-08-09 11:39 | Hit|1,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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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불 향 가득 밴 육즙과 달콤한 양념의 완벽한 조화, 소갈비 대 소갈비.
[왼쪽/오른쪽]수원 왕갈비 / 포천 이동 쪽갈비
갈비, 그것도 소. 갈. 비! 먹거리가 풍성한 21세기임에도 불구하고, 지존(至尊)의 자리를 당당하게 지키고 있는 메뉴다. 가족 외식이든 직장 회식이든 '소갈비'란 통보엔 모두들 환호성을 지른다. 공부 핑계를 대고 슬그머니 빠지려고 했던 애들도 못 이기는 척 합류하고, 삼겹살 회식 자리라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을 부하 직원도 식탁 귀퉁이에 앉아 열심히 젓가락질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설과 추석 명절 최고의 선물로 소갈비가 꼽히던 시절이 있었다. 좋게 표현해서 선물이지, '잘 좀 봐 주십사' 하고 보내는 최고급 뇌물성 상납품이었다. 그 시절 소갈비는 요즘처럼 일정한 규격으로 손질한 선물세트가 아니었다. 소의 크기를 한눈에 가늠할 수 있는 짝 갈비였다. 설이나 추석이 지나고 나면 집에 갈비 몇 짝 들어왔다며 은근히 남편이나 아버지의 권력을 과시하던 이도 많았다. 숯불에 적당히 구워 육즙이 가득한 갈비
소갈비. 한마디로 요약하면 '힘'이 담긴 음식이다. 외식이나 회식을 할 때 의논해서 결정하는 메뉴가 아니다. 음식 값을 지불할 결정권자의 일방적인 통보가 대부분이다. 힘의 과시가 느껴지는 씁쓸함이 따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사실 직장 회식 메뉴가 소갈비일 땐 격려와 우려의 마음이 교차한다. 그 전에 죽도록 고생한 대가(代價)든지, 아니면 그것을 예고하는 신호다.
어쨌든 양손에 갈빗대를 잡고, '뜯고 십고 맛보고 즐기는' 행위는 고생 뒤에 낙(樂)이든 아니든 행복한 일임엔 틀림없다. 갈비구이의 풍미를 좌우하는 숯
소갈비는 묘하다. 언양 불고기, 횡성 한우, 목포 낙지, 서산 어리굴젓 등은 '원산지+식재료 또는 메뉴'로 불리는데 소갈비는 원산지가 아닌 곳의 지명이 앞에 붙어 있다. 수원 갈비, 포천 이동 갈비가 바로 그것이다. 수원과 포천이 강원도 횡성이나 경기도 안성처럼 소고기, 아니 소갈비의 원산지가 아닌데 왜 유명할까? 게다가 수원 갈비는 그냥 갈비가 아니다. 꼭 수원은 '왕'갈비라고 한다. 반면 포천 이동 갈비는 '쪽'갈비라고도 한다. 뭐가 어떻게 돼서 그런지 양쪽의 진실을 파헤쳐 차근차근 비교해보면서 살펴보도록 하자.
'갈비'란 단어는 조선 인조 17년(1639년) 6월 24일자 《승정원일기》에 등장한다. 누군가는 갈비를 그 이전부터 먹어 왔지만 서민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던 음식이었다. 일반인들이 그나마 군침이라도 삼킬 수 있게 된 것은 값싼 수입 소갈비가 들어오면서부터다. 더불어 나라 경제 사정이 좋아지는 1970년대 들어서서야 소갈비가 가족 외식의 꼭짓점에 등극하게 된다. 수원 왕갈비. 갈비 한 대로 불판을 덮어 버릴 만큼 크다
수원 왕갈비와 포천 이동 쪽갈비, 둘 다 설탕이 들어간 달달한 양념갈비로 시작한다. 큰 갈빗대로 시선을 압도하는 수원 왕갈비는 서울의 남쪽에서, 푸짐한 양으로 승부하는 포천 이동 갈비는 서울의 북쪽에서 달달한 냄새를 풍기며 남녀노소를 유혹한다. 갈비(고기)구이의 맛을 좌우하는 요소로는 재료 자체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과학적 으로 따지면 '탄수화물이 분해된 당과 단백질이 분해된 아미노산의 결합인 마이야르 반응'의 영향이 가장 크다. 일반적으로 양념갈비구이가 생갈비구이보다 맛난 이유도 달달한 감칠맛의 결합인 이 마이야르 반응 때문이다.
수원 왕갈비는 '왕'이란 접두사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사이즈가 압권이다. 갈빗대와 갈빗살이 대략 15cm에 달한다. 갈비 한 대로 불판을 덮어 버릴 만큼 '크다'. 대신 포천 이동 쪽갈비는 갈빗대가 3cm 정도로 작지만 1인분에 7~8대라 양적으로 '많다'는 느낌이다. 왕갈비가 수원의 대표 음식이 된 것은 우시장 때문이다. 수원 우시장은 1940년대 '전국 3대 우시장'의 하나였다. 소 거래가 활발했던 영동시장 근처에는 자연스럽게 해장국집과 소갈빗집이 생겨났고, 이곳 고기 맛을 본 상인들이 "갈비가 큼지막하고 맛있다"고 소문을 내면서 유명세를 타게 됐다. 수원 왕갈비의 원조집을 찾아보면 '화춘옥'이란 옥호가 뜬다. 이곳에서 해장국에 넣어주던 갈비를 양념을 해 구워 팔면서 유명해졌다는 얘기도 있다. 또 '왕'이 단순한 사이즈 문제뿐 아니라 정조대왕의 화성행차 아침 수라상에 갈비가 올랐고, 60년대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주 찾아서 붙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풀이도 있다. [왼쪽/오른쪽]갈빗대를 잘게 자르고 세로로 갈라 내놓는 포천 이동 쪽갈비 / 간장양념을 주로 쓰는 포천 이동 갈비는 수원 왕갈비보다 물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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