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자락의 영주는 선비의 고장이다. 그 자취를 더듬는 건 단순히 역사 여행에만 그치지 않는다. 스스로를 돌이켜 보는 시간이고, 위로와 치유의 다독임을 넘어 마음의 다스림에 이르는 여정이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말한 '사람을 살리는 산'이 영주의 소백산이다.
부석사 은행나무 단풍
소수서원, 영주 여행의 출발
영주 선비 여행의 출발은 조선 선비의 산실인 소수서원이다. 오늘날로 치면 사립대학이라 할 수 있다. 선비촌이 유명세를 탔지만 그 뿌리는 변함이 없다. 소수서원은 1542년 신재 주세붕이 우리나라 주자학의 시조 회현 안향을 배향하며 세웠다. 퇴계 이황이 나라에 청해 소수(紹修)라는 사액을 받았다. 우리나라 사액서원의 시작이다.
소수서원 학자수림의 숙수사지 당간지주
소수서원의 첫 번째 매력은 진입로의 학자수림이다. 수령이 수백 년은 된 고목이 어우러진 소나무 밭이다. 푸른 그늘 아래 걸음을 내는 것만으로 마음이 정갈하다. 숙수사지 당간지주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통일시대 숙수사의 흔적이다. 유교의 성지 안에 불교의 사찰이 있는 것이 궁금한데, 안향이 공부했던 터다.
소수서원의 사주문인 지도문
주세붕이 새긴 경(敬)자바위
당간지주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소수서원 사주문 방향이다. 문 양쪽으로 500년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섰다. 땅도 조금 높아지며 서원을 알린다. 사주문 앞 경염정(景濂亭) 아래에 죽계천이 흐른다. 물가에는 경(敬)을 새긴 경자바위와 취한대가 있다. 경(敬)은 주세붕이 백운동서원을 창건하고 선비의 마음가짐으로 새겼다. 취한대는 선비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던 자리다. 이황이 터를 닦고 이름을 붙였다. 그도 취한대에서 경자바위를 바라보았으리라.
소수서원 강학당
사주문 안쪽의 첫 마중은 유생들이 공부하던 강학당이다. 명종이 하사한 편액이 걸렸다. 삼면에 툇마루를 배치한 것도 특이하다. 유생이 뒷걸음질로 퇴실할 때를 배려했다. 강학당 뒤편은 직방재와 일신재다. 동서재가 구분 없이 붙었다. 가을에는 지락재가 탐스럽다. 탁청지의 나무가 담장 너머까지 자라 가을을 물들인다. 마루가 그림을 품은 액자 같다. 지락재는 교수 숙소인 직방재보다 기단이 낮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다. 소수서원에서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면, 유생들의 낭랑한 글소리가 가을바람 결에 스치는 듯도 하다. 보통 서원은 앞 쪽에 배움 영역이 있고 뒤쪽에 제사 역역이 있다. 소수서원은 전후가 아닌 동서쪽으로 나뉜다. 염두에 두고 둘러볼 일이다.
선비촌, 조선의 선비처럼
소수서원을 나와 죽계천 변을 걷는다. 백운교 건너편에는 소수박물관이 선비정신을 꼼꼼하게 부연한다. 죽계교를 건너서는 선비촌이다. 기와집과 초가를 중심으로, 강학당, 대장간, 물레방아 등이 모여 있다. 집집마다 생활 도구를 전시해 선비의 학문과 생활공간을 같이 체험, 교육하도록 했다.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육룡이 나르샤> 등의 촬영지로 여행자들에게 인기다.
지락재에서 바라본 문성공묘
선비촌의 선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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